[중앙일보] 잠옷 파티/원제 Sleepovers 재클린 윌슨 글, 닉 샤렛 그림 시공주니어, 156쪽, 6000원 너무 친한 사이인데/원제 Trop copines 크리스 도네르 글, 미셸 게 그림, 최윤정 옮김 문학과 지성, 56쪽, 6000원 진실 게임/원제 Sanning eller konsekvens 아니카 투르 글, 프레데릭 레베나 그림, 조현실 옮김 물구나무, 232쪽, 7000원 영화 ‘트로이’에서 아킬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내 사이에 평화는 없다.

” 그 말처럼 남자 아이들은 툭하면 주먹질을 하며 싸우지만 뒤끝은 없다.

코피가 터지게 싸운 후 씩 웃으면서 다시 친구로 돌아간다.

남자 아이들의 우정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남자 아이들의 우정과는 달리 여자 아이들의 우정은 겉으로 볼 때는 연못의 잔잔한 수면 같지만 그 속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여자 아이들은 좋아하기 때문에 친구를 독점하려고 한다.

어제까지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였다가 오늘은 그 존재를 깨끗이 무시할 만큼 변덕스럽다.

싫어하는 아이에게 무시와 따돌림을 이용해서 상처를 줄 만큼 용의주도하고 잔인하다.

여자 아이들의 우정에는 열등감과 질투, 폭력으로 얼룩진 상처가 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그 상처에 지지 않는다.

재클린 윌슨의 『잠옷 파티』, 크리스 도네르의 『너무 친한 사이인데』, 아니카 투르의 『진실 게임』은 도무지 그 속사정을 알 수 없는 여자 아이들의 우정을 경쾌하게 풀어간다.

세 작품은 모두 평범한 여자 아이들이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낸다.

작품 속 아이들은 친구와 관계를 맺으면서 즐거운 경험도 하지만 동시에 어두운 그림자도 만난다.

세 작품은 여자 아이들의 우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어느 쪽도 은폐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세 작품의 미덕은 바로 이런 균형 감각에 있다.

남자 아이들은 그 수가 홀수든 짝수든 다같이 친하게 지낼 수 있지만, 여자 아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그룹이 홀수라는 것은 누군가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 아이 셋 사이에 평화는 없다.

『잠옷 파티』의 주인공 데이지가 바로 그런 외톨이다.

데이지에게는 친구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데이지의 언니가 정신지체아라는 것. 데이지는 언니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기가 싫고, 단짝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데이지의 엄마는 언니를 친구들 앞에 보이기 싫어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클로에를 잠옷 파티에 초대하지 않으려 하는 아이를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왜 클로에가 데이지를 괴롭히는지, 데이지가 클로에를 싫어하면서도 절교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어른에게는 어른의 방식이 있듯, 아이에게도 아이들끼리 통하는 방식이 있다.

데이지는 그룹의 규칙을 깨지 않으면서 클로에와 언니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다.

여자 아이들의 우정은 사소한 이유로 어긋날 수 있다.

『너무 친한 사이인데』에 등장하는 시도니와 알리마는 단짝 친구지만, 작은 사건으로 우정에 금이 간다.

알리마의 감자튀김을 시도니가 아무 말 없이 다 먹어서다.

남자 아이라면 알리마가 왜 화를 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여자 아이들은 알리마가 이해하지 못한 세 가지-걔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제야 걔를 미워했을까-에 공감할 수 있다.

시도니는 부잣집 아이고 알리마는 가난한 아랍 아이다.

처음엔 그 차이를 의식하지 못했지만, 알리마는 감자튀김 사건으로 자신이 초라하고 가난한 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리마는 시도니와 친하기 때문에 그 아이와 초라한 자신이 싫어진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사소한 이유로 화를 내고 토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좀더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처럼 “친구 아이가!”라고 말할 수 없다.

『잠옷파티』와 『너무 친한 사이인데』가 여자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우정 이야기라면, 『진실 게임』은 여자 아이들의 우정 속에 잠재한 폭력성에 주목한 이야기다.

노라는 10년이나 단짝 친구로 지내던 사비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무시를 당한다.

카린은 그런 노라의 친구가 되어주지만, 노라는 다시 사비나의 우정을 얻기 위해 카린에게 누명을 씌우게 된다.

제목 『진실게임』은 카린에게 누명을 씌운 게임인 동시에 여자 아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은유하는 말이자, 친구를 배신한 노라의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 참회록이기도 하다.

노라의 반성은 필요할 때 ‘안 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자신의 진짜 모습과 대면할 용기를 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자 아이들은 단짝 친구를 가지고 싶어하며, 그 친구에게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하고, 어디든 함께 가고 싶어 한다.

그런 우정 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로 겪는 고통은 정신의 성장통이다.

여자 아이들의 우정은 어른들이 보는 것처럼 연분홍빛은 아니지만, 그런 우정을 통해 여자 아이들은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수많은 색깔들을 알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성장의 조각보를 만들어 간다.

류화선(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