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풍요로운 갑신년 약속한대요! '손오공' 처럼 사악하 기운 물리친다고 믿어...


2004년 갑신년(甲申年)을 맞아 원숭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온갖 동물이 모여 있는 동물원에서도 원숭이의 인기는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지요. 또한 각 기업체 등에서는 원숭이 또는 원숭이 캐릭터를 이용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동물인 원숭이가 우리 문화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원숭이에 대한 기록

원숭이가 선사 시대 한반도에 살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원숭이를 우리 나라의 '토종 동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삼국 시대부터 토우나 무덤의 호석, 벽화 등에 원숭이가 등장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 나라에는 원숭이에 얽힌 이야기가 흔치 않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차돈 순교 관련 부분에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527년(법흥왕 14년)에 이차돈이 처형된 뒤 '감천(甘泉)이 갑자기 말라서 물고기와 자라가 다투어 뛰고, 곧은 나무가 저절로 부러지며 원숭이들이 떼지어 울었다'는 내용이 전합니다.

그리고 송강 정철(1536년~1593년)의 가사 '장진주사'에서는 '잰납이 파람 불제야'라는 시구로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원숭이는 조선 시대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가끔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특히 이중환(1590년~?)이 지은 '택리지'에는 정유재란 때 명나라 군사들이 원숭이 수백 마리를 들여와 일본과의 전투에서 이용한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호의 상징

불교 문화권에서 원숭이는 나쁜 기운을 막는 힘을 가진 동물로 여깁니다. 중국의 고전 '서유기(西遊記)'의 내용 가운데 원숭이인 '손오공'은 불경을 구하러 가는 삼장 법사를 도와 변신술 등으로 온갖 잡귀를 물리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원숭이가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믿음 때문에 건강과 성공, 수호의 힘을 갖고 귀신을 쫓는 역할도 한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에서 큰 건물이나 사찰 등에 원숭이 상을 세워 두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원숭이가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옷을 입은 원숭이 상을 무덤 앞에 세워 두거나 궁궐 추녀 위에 원숭이 상 등을 놓아 잡귀를 쫓고 재앙을 막도록 했지요.

▲모성애의 상징

원숭이는 재주가 많은 동물이라는 인식과 함께 부모 자식과 부부 사이의 애정이 지극한 동물로 여겨져 왔습니다. 따라서 원숭이는 지극한 모성애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중국 진나라 때의 일입니다.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에 군사가 나뉘어 탔는데, 삼협(三峽)을 지날 무렵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어미 원？이가 그 배를 쫓아 100여 리를 따라오며 슬피 울다가 지쳐 죽었습니다. 군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마음이 몹시 슬프다'는 뜻의 '단장(斷腸)'이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청자 등에서는 어미가 새끼를 꼭 껴안고 있는 원숭이 모자상(母子像)이 자주 등장합니다.

▲장수의 상징

원숭이를 소재로 한 회화나 도자기 등에는 흔히 천도 복숭아 또는 포도가 함께 그려지고는 합니다. 천도 복숭아는 한 번 열매를 맺는 데 3000 년이 걸린다는 상상의 과일로, 장수(長壽)의 의미를 갖습니다. 원숭이가 천도 복숭아를 손에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모습은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을 나타낸 것입니다. 또 원숭이가 포도나무 덩굴 사이로 다니거나 포도를 따먹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포도가 풍요와 다산(多産)을 상징한다는 점으로 볼 때 이는 부(富)를 얻고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한편 연적이나 도장 꼭지 등 선비들이 사용하는 물품 가운데 원숭이 형태를 띤 것이 많이 있었지요. 이는 '후'(원숭이 후)와 '候'(제후 후)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높은 벼슬을 얻어 부귀를 누릴 것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원숭이를 왜 잔나비라고 부를까?

민간에 전하는 속담이나 전래 이야기 속의 원숭이는 대부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는 했지요. 예를 들어 '원숭이 달 잡기'라는 속담은 분수에 안 맞게 행동하다가 화를 당하는 것을 이르고, '원숭이 잔치'라는 속담은 먹을 것도 없이 부산하기만 함을 뜻하지요.
민속 학자들은 원숭이가 사람을 꼭 닮고 간사스러울 정도로 흉내를 잘 내 종종 기피 동물로 여겨졌다고 설명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띠를 말할 때 원숭이 띠가 아닌 '잔나비 띠'로 부르는 관행이 생겨났다고 하지요.

잔나비는 '동작이 날쌔고 빠르다'를 의미하는 우리말 '재다'와 '원숭이'를 뜻하는 '납'이라는 명사가 합쳐져 생긴 말로, 원숭이를 의미하는 옛말입니다. 송강 정철의 가사에 나타나듯 처음에는 '잰납이'로 불리다가 이후 '잔나비'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정석만 기자 smj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