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심재우 기자]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을 모방에서 혁신으로 넘어가는 단계라고들 한다.

모방단계에서는 개발된 기술에 대한 일정한 학습능력과 주어진 문제의 해결능력을 갖춘 과학기술 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독자적인 기술혁신 시대에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능력을 갖춘 창의적인 우수 과학기술 인력의 확보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행 과학영재교육을 기술혁신 시대에 걸맞은 시스템으로 옷을 갈아입히자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최근 '국내 과학기술인력의 창의적 연구역량 강화방안'이란 보고서를 내고 "21세기 과학기술인력 정책 핵심 키워드는 창의성"이라며 "과학영재교육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조직심리학(장재윤 성신여대 교수).과학학(홍성욱 서울대 교수).교육학(서혜애 한국교육개발원 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참여해 다각적이고 학제적인 연구를 벌여 더욱 주목을 끌고있다.

이번 보고서는 창의성을 '영재성' 또는 '천재성' 등 순수한 개인의 속성으로만 간주하고 이에 기초해 과학교육 정책과 영재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다양한 잠재적 창의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영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직된 대학입시로 인해 초.중등학생을 위한 과학영재교육 프로그램들이 과학고나 과학영재학교 진학용으로 전락, 창의성 고양을 위한 심화학습 대신 속진학습 중심의 교육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과학영재교육을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실시할 시스템이 없고 과학영재교육 시행을 위한 연구개발과 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하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이와 함께 영재교육이 지나치게 분야 중심으로 이뤄져 과학 또는 수학만 잘아는 제한적인 영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선진국에서 여러 분야의 영재들에게 통합교육을 실시하거나 과학영재에게 예술.문화.정치.사회 등의 소양을 쌓도록 하는 이유도 '융합형 창조'에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과학영재교육이 나아갈 발전방향에 대해 우선 과학영재를 유아기부터 발굴, 육성하고 활용하는 철학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처럼 광범위하게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을 발굴해 교육하면서 점차 그 범위를 좁혀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 비중을 뒀다.

이를 위해 범부처 차원에서 영재교육을 관장함으로써, 영재들의 대학진학.병역문제를 해결해주고, 해외로 유학간 영재들에 대한 정보수집 및 관리, 영재교육기관 설치와 운영 등의 모든 문제가 체계적인 영재관리 시스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과학영재교육이 조기교육이나 속진교육을 뜻하는 낡은 개념이 아니라 창의성 고양을 위한 심화학습이라는 철학을 강조했다.

과학영재교육의 경험을 일반 교육에 접목함으로써 전체 과학교육이 '지식습득+창의성 함양'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비중있게 제시됐다.

과학영재들이 특권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끌어가는' 존재로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