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시내에서 의림지 가는 길, 야트막한 동산 아래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습니다.

과수원과 밭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건물입니다. 산자락에 폭 파묻혀 있어 일부러 찾지 않고는 지나치기 십상입니다. 보기에는 평범한 이곳에 비범한 무엇이 있습니다. 많으면 하루 1000여 명이 찾아옵니다. 다른 시·군 사람이 40%나 됩니다. 경계를 맞대고 있는 인근 충주와 단양뿐 아니라 강원도 원주·영월·정선에서도 옵니다. 어느 날은 문을 열기도 전에 경상북도 영주에서 한 엄마가 기차를 타고 왔습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큰아이는 걸려서 왔습니다. 들러 본 이의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갑니다. 툭하면 막히는 주말 국도도 아닌데 핫도그 장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숨 막힐 듯 조용한 도서관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파팍, 셔터소리에 파파파파………팍 날아오는 수 백 개의 날 선 눈동자들. 목덜미가 섬뜩했다. 기적의 도서관에 들어서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예 카메라는 꺼내지도 않았다. 슬슬 둘러보다가 눈치껏 찍을 속셈이었다. 하나 기우였다. 이빨 빠진 예닐곱 살 꼬맹이, 기저귀도 떼지 않은 두 살배기, 젖먹이를 들쳐 업은 새색시, 죄다 책을 보며 예서 논다. 도서관에서 뒹굴며 사진을 찍어도 흘겨보는 이 하나 없다. 사진은 도서관 옆으로 이사 온 종호네 가족.

가만 보니 이상한 점이 있네요. 어린이 도서관인데 아이들만 오가는 게 아닙니다. 한복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눈에 띕니다. 젖먹이를 안고 온 엄마가 있고, 아이와 책을 고르는 아빠도 보입니다. 메밀이 한창 자라는 마당엔 원두막과 디딜방아도 있네요.

문 연 지 4년째 되는 제천 기적의 도서관, 지금 그곳이 심상찮습니다. 전국의 지자체와 독서운동단체, 도서관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는 전국 28군데에 운영 노하우를 알려줬습니다. 올해는 더 많을 거라 합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수줍음 많은 호동이(10)는 남들 앞에 서는 걸 꺼렸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여럿이 있는 데서 말이라도 시킬라치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지금은 못 말리는 개구쟁이입니다. 학교에서는 장난치다 벌을 서기도 합니다. 엄마와 도서관에 드나들며 일어난 변화입니다. 엄마(최선희)는 열성 자원활동가가 되어 도서 정리·보수팀장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읽고 쓰기가 또래들에 비해 떨어지던 진수(11·혹시 아이에게 누가 될까 하여 실명을 밝히지 않습니다)는 1년 만에 책 도사가 됐습니다. 지난해 여름,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도서관을 찾고부터입니다. 방학 때 자원봉사하는 다른 엄마의 일대일 지도를 받고나서 학교생활도 씩씩해졌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신의 뜻을 또박또박 말합니다.

여름방학을 마친 어린이 사서 은빈이(12)는 뿌듯합니다. 그간 여섯 살짜리 동네 동생에게 책 읽어주기 봉사를 했거든요. 엄마가 일을 나가거나 돌봐줄 형제가 없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 프로그램입니다. 중학교에 올라가도 계속 할 작정입니다.

김문숙씨는 아이가 넷인 ‘용감한’ 엄마입니다. 아홉 살 종호, 여덟 살 종훈이, 여섯 살 영훈이, 세살 명훈이 등 고만고만하지만 키우는 일이 힘든 줄 모릅니다. 도서관의 육아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또래의 아이를 가진 엄마들과 품앗이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아이들이 책과 친구가 되니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먼 거리를 차로 다니는 게 번거로워 명훈이를 가졌을 때 아예 도서관 옆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맥가이버 할아버지

연세가 ‘7학년 2반’인 이태영 할아버지는 자다가도 혼자 웃습니다. 요즘 살맛 나거든요. 오늘도 도서관에서 할아버지·할머니로 이뤄진 ‘호랑이 담뱃대’ 자원활동가들과 막내손자뻘 꼬맹이들에게 옛날얘기를 들려줍니다. 귀 쫑긋 세우고 눈 반짝이며 듣는 아이들, 아는 이야기라며 줄거리를 먼저 말해 김 빼는 녀석들 모두 예쁘기만 합니다. 친구들을 만나 왕년의 무용담이나 자식 얘기 풀어놓으며 막걸리 잔 주고받던 때보다 신명나는 나날입니다. 할아버지의 봉고차는 연장 백화점입니다. 이 연장으로 여러 어르신과 함께 도서관 안팎살림을 돌봅니다. 열람실 책꽂이를 만들고, 밭을 일구고, 부서진 의자를 고칩니다. 학교 선생님 시절에 손 호루라기, 세모 기와를 발명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봉사해 온 몇 년 동안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답니다. 오늘 아침엔 멀리 청주까지 스포츠댄스 시합에 다녀왔다고 자랑입니다.

이렇게 도서관 일에 앞장서는 어르신들이 20여 명입니다. 이분들 모두 한두 가지씩의 장기가 있습니다. 두루마기·유건 차림에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버려진 끈으로 바구니를 엮고, 밀짚으로 여치집을 꾸미고, 볏짚으로 인형을 만들고, 폐지로 꽃병을 빚습니다.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새집도 만듭니다. 서로의 기술과 재주를 가르치고 배워 아이들에게 베풉니다. 별거 아니라고 여겨온 솜씨가 아이들과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는 게 신기하고 흐뭇합니다.

이분들께 보수도 없는데 왜? 하고 물으면 혼쭐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진짜 봉사라는 거지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겁니다.

앞뜰의 원두막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네요. 할아버지 원두막이 뭐야. 어느 날 꼬마 하나가 물었습니다. 어르신들은 연장 들고, 관장은 지게 지고 산으로 갔습니다. 날라 온 나무를 땀 뻘뻘 흘리며 몇 날을 깎고 며칠을 다듬었습니다. 원두막은 지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입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 책 읽고, 숙제하고, 이야기 듣고, 낮잠도 잡니다. 뒤란의 석기시대 움집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원두막 옆 디딜방아에도 사연이 있답니다. 교통사고를 내고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분이 여기에 왔습니다. 와서 일하다 이곳 식구들의 열정에 반했습니다. 의무봉사기간을 다 채웠는데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디딜방아는 그가 땀으로 만든 선물입니다. 이분, 지금은 자원활동가가 돼 열심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올봄, 도서관 식구들도 모르는 새 뒤뜰에 꽃밭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아침 일찍 나와 흙을 일궈 씨를 뿌리고 물을 줬습니다. 휑하던 뜰에 화색이 돌더니 아기자기한 정원으로 변했습니다. 중기 할머니입니다. 손자 데리고 도서관에 다니다 빈 땅을 보고 팔을 걷어붙인 겁니다. 알고 보니 1998년부터 인터넷 야생화 카페 회원으로 활동해 온 내공 탄탄한 분입니다.

이런 마음 씀씀이가 소문났습니다. ‘호랑이 담뱃대’ 어르신들은 요즘 인근 유치원과 초등학교 ‘역내 출장’뿐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원정 출장’을 다니느라 바쁩니다. ‘전국구 스타’ 탄생입니다.

밝은 열람실 환한 아이들

열람실이 색다릅니다. 도서관이라면 근엄하고 차분한 공기가 흘러야 할 것 같은데 여기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전망 좋은 카페 분위기입니다. 곰팡내 나는 책들이 천장까지 빼곡해야 어울릴 듯한데 책꽂이는 낮고 천장은 높습니다. 작은 창에 형광등 조명 대신 너른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아이들이 만든 공예품들이 창틀에 주렁주렁 매달리고, 서가에 삐뚤빼뚤 놓여 있습니다. 창가 통나무에서는 버섯이 자랍니다.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가로 10m는 돼 보이는 대작입니다.

책 읽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각각입니다. 마루에 발 뻗고 앉은 아이, 배 깔고 있는 꼬마, 의자 세 개를 차지하고 벌렁 누운 녀석도 있네요. 어깨 바짝 붙이고 소곤소곤 수다를 떠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서가 사이에서 숨바꼭질하다 엄마를 찾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도 있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있네요. 열람실에 딸린 작은 방에는 엄마 이야기를 듣다가 잠든 아가도 있습니다. ＂어? 이 방은 동그랗게 생겼어, 와! 여기는 세모 방이야.” 아이들은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신이 납니다. 수선스럽다고 누가 눈을 부라리지도 않습니다. 작은 속삭임에도 따가운 시선들을 냅다 꽂아대는 ‘경건한’ 도서관이 아닙니다. 이리 보면 유아방입니다. 저리 보면 아이들 놀이터입니다. 어찌 보면 가족 소풍 장소입니다. 어르신들 어울리는 걸 보면 동네 사랑방입니다. 다시 보니 여기는 아기부터 노인까지 함께 사는 다복한 집입니다.

‘상머슴’ 관장 최진봉

장서 4만3000권의 이 도서관을 꾸려가는 ‘마당쇠’는 최진봉 관장입니다. 도서관을 지을 때의 일입니다. 최 관장은 시공업체에서 주변 조경까지 근사하게 마무리해 주겠다는 걸 마다했습니다. 빈 땅을 일궈 목화를 심었습니다. 우리 밀, 옥수수도 심었습니다. 흙도 책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함께 씨 뿌리고, 보리 타작하고, 고구마 캐며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친구가 돼 갑니다. 이웃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오기도 합니다. 도서관 창고에 빼곡한 삽·호미·낫·톱·괭이 같은 쇠붙이들은 녹슬 틈이 없습니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책 읽는 곳이죠. 책 속의 내용을 체험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책에 빠져듭니다. 어릴 때 친해진 책은 인생 끝까지 가는 친구죠. 책을 모르고 와서 놀다 책을 알고 나가면 그만이지요.

하고 있는 일들, 할 일들을 들려주며 최 관장은 사람 좋게 웃습니다. 직원들도 늘 싱글벙글입니다. 단체사진 찍어주며 웃는 모습들 참 자연스럽다 하니 아이들과 놀다 보니 그런가 봐요, 하며 또 웃습니다.

최 관장은 구비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교수라는 보이는 꿈을 밀어놓고 보이지 않는 꿈을 택했습니다. 작은 꿈 하나 안고 아내의 고향이라는 연고 밖에 없는 제천에 눌러앉았습니다. 평소 아이들과 도서관에 다니며 느꼈던 불편을 직접 고쳐 보자, 진짜 도서관 하나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였지요.

네 아이 엄마 김문숙씨가 말합니다. 관장님요, 아이들 잘 안아주고 많이 놀아줘요, 엄마들이 모르는 책 이야기해 주고요, 살아 있는 교육 정보 꼼꼼히 알려주죠, 그림 솜씨 보셨어요, 만화가 수준이에요, 아이디어는 또 얼마나 많은지, 사람 하나가 제천을 바꾸고 있어요.

최 관장은 민속·문화 쪽의 많은 프로그램을 직접 맡습니다. 이야기가 아이들의 생활에 스미도록 전래 설화에 공을 들입니다. 천성이 ‘식물성’이라 아이들과 들로 산으로 다니는 게 좋답니다. 눈높이가 낮으니 그의 몇 마디면 꼬박꼬박 졸던 아이들이 눈을 반짝 뜹니다.

당당한 치맛바람

사무실에 걸려 있는 화이트보드에 8월의 프로그램이 빼곡합니다. 쉬는 날인 화요일 빼고는 빈틈이 없습니다. 지난 17일에는 6개의 행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책 읽기만이 아닙니다. 열람실 옆 다섯나무극장에서는 문화 행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연극과 공연도 합니다. 도서관 밖은 체험 현장입니다. 냇가에서 송사리 잡고, 책의 무대로 여행을 갑니다. 노란 차에 책을 싣고 외진 시골마을 어린이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지난 13일 ‘도서관에서 하룻밤 자기’ 행사 때였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막연한 부담감을 없애주려 만든 행사입니다. 150명이 함께 먹을 밥을 하는데 가마솥에 구멍이 났습니다. 해는 지고, 물은 새고 자원봉사자들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밀가루 반죽해 때우면 돼. 호랑이 담뱃대 어르신 말씀 한 마디는 구원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마다 있는 이 행사는 올해로 네 번째입니다. 이번 주제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였습니다. 130명의 아이들이 10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날아라 태권 브이’ ‘박치기왕 김일’ ‘미니스커트 단속’ ‘쥐잡기 운동’과 같은 토막극을 무대에 올리며 서로 배꼽을 쥐었습니다. 인공위성을 만들어 쏘려는데 비가 훼방을 놓았습니다. 대신에 옥수수와 감자를 쪄 먹으며 하하호호 웃고, 이불 속에서 귀신 이야기 들으며 오돌오돌 떨었습니다. 뜰에서 딴 봉숭아로 손톱에 물도 들였지요. 서로 모르고 만나 헤어질 땐 모두 친구가 됐습니다. 도서관에 매일 와야겠다는 친구가 많이 생겼습니다. 도서관 행사 참가신청 때면 어 하는 사이에 정원이 다 찹니다. 서울에서도 오고 싶답니다. 1년 전에 해본 아이들은 아쉽지만 참가 제한을 합니다.

여기까지 ‘치맛바람’이 불어닥친 건 순전히 이 도서관 때문입니다. 행사 정보를 좌악 꿰고 있는 엄마가 ‘왕치마’ 입니다. 동작 빠르면 돈 들이지 않고 속 꽉 찬 ‘사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거든요.

책 뒤의 바코드

‘미다스의 손’ 최 관장의 손을 거치는 이런 프로그램이 올해만 100여 개입니다. 도서관 식구 다섯 명이 꾸려가기엔 허덕허덕할 규모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탄탄한 외부 강사진과 자원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70여 명의 자원활동가는 도서정리·보수팀, 프로그램팀, 꾸미기·홍보팀, 북스타트팀으로 나뉘어 활동합니다. 엄마들은 자원활동가들과 손잡고 동아리를 만들어 책·영어동화·놀이를 연구합니다. 바쁜 나날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갑니다. 최 관장과 자원활동가들은 서로에게 그 공을 돌립니다. 민간 운영자를 믿고 밀어주는 제천시는 무엇보다 든든한 ‘백’입니다. 진심이 통해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겠지요. 이 사람들 서로 든 정이 여간 도탑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은 최 관장이 맘 변해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 관장, 며칠 전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상머슴처럼 일하다가 탈이 난 겁니다. 4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병문안 와 내 몸처럼 걱정해 주는 ‘동네 사람들’ 보며 최 관장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도서관은 입장료가 없습니다. 시가 책정한 예산 안에서 책을 사고 식구들 월급도 줍니다. 슬쩍 물어본 최 관장 봉급 많지 않습니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둘 뒷바라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함께 일하는 사서들 자랑이 장난 아닙니다. 전국 최고라며 엄지손가락 치켜듭니다. 여기의 책들은 표지에 바코드가 없습니다. 맨 뒷장에 붙어 있습니다. 표지는 책의 얼굴인데, 아이들이 맨 먼저 보는 쪽인데 어떻게 그림을 망가뜨릴 수 있냐는 거지요. 사서들이 그런 작은 일까지 신경 씁니다. 아이들 뒤에서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이들이 그래서 고맙습니다.

판화가 이철수

도서관 홈페이지(www.kidslib.org) 첫 화면의 바탕그림이 익숙합니다. 도서관 입구 커다란 바위에도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21년 전 제천에 와 농사지으며 판화 작업 하는 이철수 선생의 손끝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도서관 유치위원장, 초대 운영위원장을 맡아 열과 성을 다했지요. 천둥산 박달재 아래 있는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시 인구가 14만 명이 좀 안 되는데 유치 운동에 6만 명이 서명했어요. 서명 받은 현수막으로 띠를 이어 의림지를 한 바퀴 감았습니다. 대단했죠. 최 관장, 아이 같은 사람이에요. 아이들 입장에서 관계를 풀어갈 줄 알아요. 도서관 프로그램이 말해주잖아요. 호랑이 담뱃대 어르신들 일하시는 거 보세요. 그만한 관장이 없어요. 추천 잘 했지요.” 옆에서 듣던 박종철 (숭실대 교수·국문학)운영위원장이 한마디 더합니다.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지요. 도서관학 전공자보다 잘 운영할 거라 믿었어요.

작은 도시 큰 꿈

하루 2000여 권의 책이 도서관을 들고 납니다. 대출회원 수 7100명 중 초등학생이 5000명, 나머지는 취학 전 아이들입니다. 제천시 초등학생 두 명 중 한 명이 회원인 셈입니다. 찾는 발길 자꾸 늘고 책 점점 쌓여 도서관은 이제 비좁습니다. 창문을 발코니 밖으로 옮기는 공사를 곧 시작합니다. 늦여름 햇살 자글자글한 도서관 주위엔 백일홍·나팔꽃·달리아 꽃 피고 집니다. 원두막 지붕 위에선 둥근 박이 속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도시 예쁜 도서관, 큰 꿈 하나 영글어 갑니다.


[동아일보 발췌]